지난 16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오션 코스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KEB 하나은행챔피언십 우승컵은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에 돌아갔지만, 최고 인기 스타는 한국계 앨리슨 리(21·한국 이름 이화현) 몫이었다.

첫날 단독 선두에 나서면서 주목받은 앨리슨 리는 나흘 내내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최종 라운드 역전패를 당한 뒤 눈물을 쏟아냈던 앨리슨 리는 출국을 앞두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행복한 일주일”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역전패의 아픔은 여전히 잊지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받아넘겼다.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이긴 만큼 패배도 많이 경험했다. 이긴 경기에서 배웠고 진 경기에서도 배웠다. 크게 실망한 건 사실이지만 다음에 또다시 이런 상황에 온다면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앨리슨 리는 “올해 어깨 부상과 슬럼프를 겪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이번 시즌 최고 성적을 올렸다. 내겐 아주 특별한 대회였다”고 준우승이라는 성과에 점수를 줬다.

앨리슨 리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이다. 한국에서 한국 여성과 결혼해서 앨리슨 리의 아버지 이성일 씨를 낳았다. 앨리슨 리의 아버지 이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스무살이 넘도록 한국에서 살다 미국에 건너갔다. 한국에서 살다 보니 어머니 성(姓)을 썼다. 앨리슨 리의 성 ‘리'(Lee)는 할머니에서 물려받은 셈이다.

앨리슨 리의 어머니 김성신 씨도 한국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갔다.

앨리슨 리는 “말하자면 75% 한국인”라면서도 “사실상 100% 한국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아버지, 어머니와 늘 한국어로 대화하고 매일 (한국식) 밥을 먹는다”는 앨리슨 리는 10살 때까지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 사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도시 발렌시아 역시 한인이 많은 곳이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열 살 때 처음 한국에 와봤고 열한 살 때 삼촌 결혼식에 왔다. 성인이 돼서는 지난해 두 차례,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라고 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진짜 대단했다”고 앨리슨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날마다 나를 따라 다니면서 응원해주는 갤러리에 놀랐다. 미국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라며 “모든 홀에서 ‘앨리슨, 파이팅’이라는 응원을 들었다.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았다”고 말하는 앨리슨 리의 표정은 행복감이 가득했다.

그는 이런 열광적인 응원이 “내가 같은 핏줄이라고 여긴 때문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앨리슨 리는 “경기장에서만 행복했다”고 볼을 불룩 내밀었다.

밀린 공부 때문에 경기가 끝나면 호텔 방에서 꼼짝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앨리슨 리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다. 내년 6월에 졸업장을 받는 게 목표라서 해야 할 공부가 많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호텔 방으로 달려가 밤늦도록 공부했다. 강의를 듣고 온 급우에게 전화를 강의 내용을 전달받기도 했다”는 앨리슨 리는 “저녁 먹으러 나갈 시간도 없어서 혼자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고 입을 삐죽였다.

이번 시즌도 5개 대회가 더 남았지만, 시즌 마지막 대회 빼고 4개 대회는 불참한다. 학점을 따려면 대회 출전을 할 수 없어서다.

앨리슨 리는 그러나 “엄마가 이번에 정말 신이 나셨다”면서 “엄마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동석한 어머니 김 씨는 “앨리슨 혼자 호텔 방에 놔두고 남대문시장도 다녀왔고, 매일매일 즐겁게 보냈다”고 깔깔 웃었다.

17일에도 자선 골프 라운드를 치르느라 바빴던 앨리슨은 늦은 저녁 식사에서 비로소 등심구이를 비롯한 한국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앨리슨 리에게 왜 이렇게 힘들게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는지 물어보자 “골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으냐”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많은 주니어 골프 선수들이 대학 대신 투어 데뷔를 선택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면서 “프로 선수 생활을 1, 2년 더 빨리 시작한다면 돈은 더 벌 수 있겠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UCLA 학생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확고한 신념으로 버텨온 대학 생활이지만 쉽지는 않았고 앨리슨 리는 강조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쉰 앨리슨 리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힘들어서 정말 많이 울었다. 하지만 다 끝나가는 지금은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골프 선수로서 목표도 남다르다.

“투어에서 하루빨리 우승하는 게 당면 목표”라고 말할 땐 다른 선수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롤모델 되는 게 프로 선수로서 목표”라고 덧붙였다.

선수 생활도 오래 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선수로 뛰는 건 “나이가 들어서 더는 투어에서 경쟁할 수 없을 때까지”라는 그는 “줄리 잉스터가 대단한 선수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잉스터처럼 쉰 살이 넘어서도 골프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골프 선수를 그만두면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뭘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더니 “대학에서 배울 걸 활용하고 싶다. 내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대학을 마치려는 이유도 바로 그런 생각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앨리슨 리는 투어에서 가장 친한 선수가 백규정(21·CJ오쇼핑)이라고 공개했다.

“동갑이고 같이 신인 시즌을 보냈고…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는 친구”라면서 “너무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만날 때마다 뭔가 자꾸 손에 쥐여주는 장하나 언니도 좋아하고, 전인지 언니도 작년에 영종도 대회 첫날에 같이 경기하고 나서 친해졌다”고 앨리슨 리는 덧붙였다.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쇼핑”이라고 외친 앨리슨 리는 18일 오후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기에 앞서 짬을 내 들른 백화점에서 맨 먼저 어머니 김 씨에게 선물할 가방을 샀다.

“작년에 가본 명동이 너무 가보고 싶었다”는 앨리슨 리는 “롯데월드도 가고 싶고 쇼핑도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내년에 또 올 거니까 그때 실컷 하겠다”면서 행복했던 ‘엄마 나라’ 나들이를 마감했다.